소리들
나희덕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 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 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고요 속에서 다양한 소리가 들리게 표현을 했습니다.
어쩌면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귀롤 통해 사물에 귀기울이는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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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
나희덕
숲은 만조다
바람이란 바람 모두 밀려와 나무들 해초처럼
일렁이고
일렁임은 일렁임끼리 부딪쳐 자꾸만 파도를 만든다
숲은 얼마나 오래 웅웅거리는 벌떼들을 키워온
것일까
아주 먼 데서 온 바람이 숲을 건드리자
숨죽이고 있던 모래알갱이들까지 우우 일어나 몰려다닌다
저기 거북의 등처럼 낮게 엎드린 잿빛 바위,
그 완강한 침묵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숲은 출렁거린다
아니라 아니라고 온몸을 흔든다 스스로 범람한다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은 육탈한다
부러진 나뭇가지들 떠내려간다
숲은 바다에 비유하고 있어요.
만조라는 것은 바닷물이 높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바다속에 미역같은 해조류들은 물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죠. 마찬가지로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
화자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벗어날 수 없네요. 같이 만조에서 범람을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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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음기의 역사
나희덕
저 낡은 소리는
어떤 상처를 읽은 것이다.
바늘은 소리가 남긴 기억을
그 만져지지 않는 길을
천천히 되밟으며 지나간다
아무리 여러번 읽어도
상처의 길은
더 깊게 패이거나 덧나지 않는다
닳아가는 것은
그것을 읽는 바늘끝일 뿐
저 소리로는
저 소리로만으로는
스스로 암전(暗電)될 수 없어
소리를 기록할 수 있다고 믿게 된 때부터
상처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때부터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소리가 태어난 침묵 속으로
축음기를 잘 이해해서 묘사한 시인것 같아요.
레코드판에 홈을 만들어 소리를 기록하죠.
그렇기에 소리는 상처를 읽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밋한 레코드판은 침묵밖에 없지만,
홈이 있는 레코드판은 소리가 나죠.
소리는 침묵에서 나오는 것,
상처가 반복되어야 한 사람의 삶이 태어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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