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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홍신선
지나간 일은 원인무효다
지나간 일은 원인무효다
긴 겨울 혹한에 손바닥 동상이 든 시누이 잎들이
두껍지 않은 백노지색으로 마른다
서울 북쪽까지 이민 온 마른 잎들은
끊어진 철근처럼 속의 평행맥들 퉁그러져 나왔거나
영광도 굴욕도 없이 찢긴 깃발처럼
일제히 고사한 줄기 끝에 매달려 있다.
부근의
방부제 친 미라처럼 썩지 않는
몇 구의 폐기된 궂은 잎들 겹쌓인 속에서
그러나
온몸의 진기를 끌어올리느라 이맛전까지 파랗게 질린
여남은 그루의 죽순들
비밀결사하듯 막 신발끈 풀고 앉아
구호 삼키고 있다
지나간 일은 모두 원인무효다
새로운 시작이다.
역사는게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죠.
어쩌면 이게 맞는 것 같아요.
아무리 나쁜 독제정치를 해도 그게 계속 이어저온다면 그게 당연하다는 명분이 생겼겠죠.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 몇은 재해석을 통해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과거에 나쁜 인물이었던 사람이
오늘날 재해석을 통해 위대한 사람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지요
화자는 원인무효를 통해 혁명이라는 것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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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
홍신선
얼마나 지겨우면 저렇게 떼로 몰려 선 오리나무들 진저리치는가
이따금 자해하듯 부르르 부르르 사십년생 몸을 떤다
한여름내 허공의 백금도가니 속에서 벼려낸
줄톱이며 삽, 식칼만한 잎들을
마른 신경들을 적막하게 툭툭 꺾어내린다
그 오리나무의 소리없는 진저리의 진앙지는 어디인가
유관부 나이테들이 우물벽인 듯 짜들어간
심부(深部)에서, 쿨럭쿨럭 기를 쓰고 밑바닥 욕망들을 길어올리느라
흔들리는가 고장난 양수기의 목구멍처럼 쿨럭이며 올라오는
죽음들로 경련하는가
가을 찬 비 속 허리와 어깨에서 문득 고동색 녹물이 흘러나와
번진다. 내부기관의 예리했던 감성이나 기억들
관절의 물렁뼈들 이제는 개먹을 대로 개먹어
아무리 몽키 스패너로 힘껏 조여도 조여지지 않는
이음새 틈새로 산화된 물질이 흘러내린다
그래도 시동 꺼뜨리지 않고 간간히 진저리라도 쳐야 하는가
딱딱 부딪는 이빨 기슭에 몰려와 부서지는 침들이며
부유하는 언어들
선술집 안쪽에 버티고 들어앉은 단골 주정뱅이처럼
나무들 내부 깊이에 아직도 권태 몇이 쭈그리고 있다
오래 너무 살다보면
싱싱한 생에서도 녹물이 흘러나온다
뇌우 뒤의 햇살 환한 하늘 너머 새들이 흩어진다
마음속의 전율을 시각화한 것 같아요.
녹이 슨다는 것은 고장이 난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녹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저 녹의 번짐이 어느정도 인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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