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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OC 공부/우리 시대 한국의 시인들

10주차 - 박정대의 시 : 탈주의 욕망

by 2000vud 2017.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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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나무 한 그루


박정대


잠들 수도 없고 잠들지 않을 수도 없는 아침에

나는 가까운 산을 내려온 하늘의

푸른 맨발을 본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아침의

가깝고도 먼 곳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여

너는 지난밤 무거운 공기들의 외투를 벗고

눈부신 알몸으로 빛나고 있구나 정년

아무런 걱정도 없이 너를 드러내 보이는

이 순결한 아침의 햇살 속에서

사월의 투명한 대기는 참혹한 기쁨에 온몸을 떨고

나의 불면은 아무 것도 노래할 수 없구나

그리고 내오랜 그리움으로도 다다를 수 없는 곳에서

흙들의 사랑은 함부로 꽃들을 피워올리고 있다


보이는 곳의 사랑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구나

태어난 자리에서 뿌리깊은 사랑을 하는 온갖 나무들이여

저마다의 격렬한 희망을 표명하며 흘러가는 오 짐승이여 강물이여

너희들이 흘러가서는 마치 최초의 기쁨으로 스며드는

오, 그 알 수 없는 정밀한 욕망의 나무를 나에게

나에게만 가르쳐다오 나는 스무 해가 넘게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은밀한 나무를 꿈꾸어 왔나니

그 나무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꿀과 같은 열매가 열리고 잎사귀들의 미풍만으로도

나는 늘 달콤하고 아늑한 꿈길에 드나니 오, 사월의 나무여

너의 수액으로 가는 길을 나에게 나에게만 가르쳐다오


너에게로 가기 위하여

나는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 끝에도 머무르지 않았고

구름의 사소한 슬픔으로도 머무르지 않았었으니

정녕 바람의 온갖 예언들은 알고 있었으리

내가 왜 스스로 가장 작은 지상의 벌레가 되어 땅속의

땅속의 지하수로 가는 동굴을 파고 있었는지


4월은 생명들이 시작하는 달이기 하지요.

아마 무거운 공기들의 외투를 벗고 눈부신 알몸으로 있는 것은

추위가 살아지고 따뜻한 공기가 왔다는 징조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화자는 너에게로 가기 위해

날아가는 새들이나 구름처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대조적이네요.

그것은 그리운 사람이 땅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체적으로 기억과 추억으로 가기 위한 화자는 땅을 선택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그리운 사람에게 가고싶어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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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뿌리


박정대


그것은 풀리지 않는 욕망의 매듭 같은 것이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려 하늘의 뿌리가 지상에 스며들 때

더러는 꿈속까지 비가 내려

잠든 욕망의 옆구리를 들쑤실 때

애인이여, 너를 덮고 잠들던 나의 곤고한 청춘은

한 장의 음화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갈증과 회환이 교차하는 새벽의 문턱에서

삶은 때로는 죽음보다도 더 깊은 침묵으로

나를 엄습하고, 그 격렬한 고독으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던 것은

어쩌면 그 아름답고 우울한

한 장의 음화였을지도 모른다


산다는 게 어쩌면

낡은 구식 쟁기와 같은 것이어서

이미 경작할 마음의 밭이 없는 나는

늘 죽음 쪽에 가깝고,

죽음이 나를 수소문하는 저잣거리에서

나는 추억을 헐값에 팔아 넘겼으므로

홀가분하게 죽음에 자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상의 유리창에 달라붙은 한없이 습기찬 성에처럼

날이 밝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병든 혼의 가혹한 질주,

나는 통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덮고 있는 길까마귀떼의 하늘을 지나

하나의 가혹한 시간과 공기 속을

나는 통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의 자전을 거슬러올라 또 다른 별의

윤회 속으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의 뿌리여,

너는 왜 지상의 강물에 발을 담그는가

넉넉한 대지의 품속으로 뿌리내리던

빗방울들의 육체여, 너는 지금 어디를

통과해가고 있는가, 밤새도록 비가 내려

그 무슨 격렬한 표현처럼 나를 휩쌀 때

숫처녀와 씹하듯 그렇게, 오오, 나는

하늘의 세상을 통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속도에의 열망같은 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던,

이 잔인하고도 황홀한

시간의 늪 속에서


화자의 마음과 추억속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억을 헐 값에 팔아버리고, 성에처럼 녹아버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너무 크나큰 아픔이기에 병든 혼은 가혹한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윤회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과거를 다 잊고 새로운 삶을 하고싶다는 마음이 들어나있는 것이지요.

속도를 계속 올리는 것은 화자가 삶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탈주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아직 크나큰 이별을 겪지는 않았지만, 저 또한 큰 이별을 경험한다면

시간이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네요.

시간이 기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아픔을 잊게 해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억을 잃어버리게 해서 가혹하고 잔인한 것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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