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이 시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들중 열손가락안에 드는 시다. 단어의 통념을 타파한 시 긍정의 슬픔, 부정의 기쁨 정말 이런 참신한 발상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특히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할머니는 분명 사회적 약자다 그런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앉아 쌈짓돈을 구궐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쌈짓돈을 뺏어가면서 모순의 기쁨을 하는 우리들을 질타고 있는 곳이 마음에 들었다.
한번도 평등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기쁨! 나도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눈물을 흘리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