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 이장욱의 시 2 : 구름의 형식 2
편집증 환자가 앉아 있는 광장
이장욱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소나기, 내린다 문득 허공에 그어지는 사선 사이, 황혼의 시청 앞을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는 사람들. 지나가라 지나가라 가능한 빨리 지나가라 견딜 수 없는 느린 속도로 생의 너머를 지나는 지금. 물론 누구나, 제 삶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문득 유턴하는 관광버스. 지금 당신이 나를 의심하듯 나도 나를 의심한다. 한 여자가 머나먼 골목을 나와 의아한 표정으로 길 끝을 바라본다.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비 내린다 새한 빌딩의 가장 아래 계단에 앉아 광장을 바라본다. 깜빡깜빡 졸며 회상하는 일생. 이쯤이면 괜찮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혹은 집도 길도 아닌 오후의 술청에 들어 죽은 애인과 술 한 잔 하는 꿈. 우리를 위한 비,
내린다. 저것은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며 굽 높은 신발을 고쳐 신는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뒤돌아보는 자들에 대한 혐오, 그러므로 지나가라, 가능한 빨리 지나가라. 내가 나를 의심하는 만큼 집요한 자세로, 구름을 향해 날아근 광장의 비둘기, 비에 젖는 날개.
- 편집증이라는 것이 남을 잘 의심하는 것이죠.
내가 나를 의심하는 만큼 집요한 자세로 이말이 공감이 가는 것이,
무의식 속에서 제가 했던 행동들이 남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제 자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죠.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편집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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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분 전의 잠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들 내 잠 속에 쌓이고 있었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 년 전의 문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 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 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 참으로 몽환적인 느낌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