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 최동호의 시 2. 소리의 공간화
최동호의 2번째 시집 [아침책상]
1. 고찰한 초기 시의 인식과 기법을 함축하여 수준 높은 시적 차원을 보여준다.
2. 형식의 균제와 조화로운 언어의 배치가 간결성 속에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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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빗소리
최동호
여름 낙숫물이
바위를 파내리다가 물러간 다음
빈 방에서
가을 빗소리 들으니
비로소 막혔던 귀가 뚫린다.
울울한 녹음이 가로막아
여름내 찾을 수 없던
산 모퉁이 길에는
흙 묻은 솔방울이
빗방울 따라 툭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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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빗소리의 중심소재 '물'
소리를 통해 공간의 미학을 형성한 것이다.
풀이 마르는 소리와 같이 물이 나온다.
'빈 방' >> 속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더 많이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빗방울의 떨어짐은 자연 현상의 순리이기도 하며, 물의 순환성이라는 속성을 갖는다.
또한 솔방울이 빗방울을 따라 떨어지는 것도
떨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무가 된다기 때문에 자연의 순환을 말하고 있다.
※ 최동호 시의 특징
1. 번잡한 현실과 세속된 욕망으로 오염된 자아를 정화
2. 본래적 자아를 회복
3. 생명의 순환성을 통해 자연의 이법과 하나로 통합되려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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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빛의 책 읽기
최동호
굽은 등뼈 골골이 비추며
깊은 산
찬 바위 속에 스미는 구나
얼음 녹이는 빛을 머금어
창가에 꽃망울 솟아오르고,
마른 줄기 푸르게 숨쉬려 하는구나.
멀고 깊어라, 겨울햇빛
떨며 펼치던 책 갈피 행간마다
따스한 손길 배어드는구나.
활자 뒤에 엉켜 붙어
아물지 않던 상처 다 어루만지고 잃었던
대지의 입김을 되살아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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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햇빛, 활자의 주 이미지다.
또한 되살아난다 등의 회복에 있다.
중심 소재 '햇빛'
<가을 빗소리에서는 빗방울을 따라 솔방울이 떨어진다>라고 했으나.
<햇빛을 통해 꽃망울 솟아오르고,>를 통해
최동호 시인의 시안에는 생명, 계절의 순환이라는 질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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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는 사람
최동호
꽃이 지자 말이 없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얼굴은 이제 그가
아니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도
그가 아니다,
말이 없는 사람은 그가
아니다.
온세상 비추는
햇빛 쟁쟁한 대낮에
바람소리도 이렇게 정겨운데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은 울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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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었다> 언어에 대한 회의와
<그가 아니다> 시인의 추구하던 가치가 한계에 도달했다.
내면에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산길', 길 떠난 소년'이라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말에 대한 회의, 자아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느낌이 든다.